OAL 이상헌 1강. 건축이란 무엇인가?

Open Architecture Lecture

Vol.1 대한민국에서 건축하기

Chap.1 건축이란 무엇인가?

Date 2013.12.14

Lecturer 이상헌 교수 (건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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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 건축의 정의와 현대건축의 상황 >

대한민국에서는 건축사의 대우가 낮다. 이 문제의 근본적인 이유와 대책을 세우기 위해 먼저 건축이 무엇인지, 우리 사회에서 건축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건축은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렵다.
고전적 정의로는 미학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것만이 건축이라고 하였다. (자전거 주차장은 건물이고 링컨 성당은 건축이다) 그러나 이 미학적 감흥이란 기준이 모호하다. 그렇다면 누가 설계했느냐에 따라 건축과 건물이 구분되는 것일까? 그것 또한 애매하다. 역사 속에서 자연의 풍토에 따라 자연스럽게 지어져 온 것도 건축이고, 자연 속의 동물들의 집도 건축이며, 인간이 관련하는 모든 공간, 건물이 건축의 범주 안에 속한다. 이렇게 건축의 개념과 범위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건축은 문화적 의미를 갖는 건물이나 구조물을 만드는 실무이자 이론적 체계를 갖춘 학문’이다.

건축을 정의한 최초 인물은 건축의 3요소 (구조, 기능, 미)를 제창한 로마의 비트루비우스(Vitruvius)이다. 그는 건축은 상징적이고 아름다워야 하며 또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에 윤리를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건축가는 학자이며 제도사이고 수학자라 하였으며, 철학과 역사, 음악, 의학, 천문학, 천문학적 계산에도 능통한 통합적 지식체계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의 정의를 다시 재정리한 시기는 르네상스이다. 알베르티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비트루비우스 이후 가장 먼저 건축이론서를 집필했으며 건축의 인문적 이론화를 펼쳤다.

“빌딩은 선(line)과 물질(matter)로 이루어진 하나의 몸(body)이다. 선은 재료나 장식과 달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비례와 기하학적 구성을 이룬다. 물질은 자연에서 얻지만, 선은 마음의 생산물이다. <lineament>” (ex: 알베르티의 Maria Novella 성당의 파사드.)

선(line)으로 구성된 비례와 기하학이 마음을 동요시킨다. 디자인이란 그것을 다루는, 우주적 질서를 표현하는 작업이다.

건축가는 물질을 다루는 장인(craftman)이 아니다. 우주적 질서를 표현하는 학자이다. 때문에 건축가의 작업은 현장이 아닌 아뜰리에에서 이루어진다. 르네상스에서는 건축을 회화, 조각과 같은 시각예술로 보았다. 우주를 시각적으로 표현하였기 때문에 투시도, 기하학이 부상하였다. 이 시기에는 디자인과 실행의 간격이 컸기 때문에 이 둘을 분리하였다. (Humanist Scholar / Craftman)
르네상스의 이러한 분리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양상이다.

“건축가는 목수나 조립공과 같은 육체노동자가 아니다. 이들은 건축가의 도구이다. 건축가는 명확하고 뛰어난 재능과 방법으로 작업을 완성하며,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참신하고 고귀한 학문에 대한 완전한 통찰(노블 사이언스noble science)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 알베르티

 

건축(건축교육)에 대한 정의

“건축계획의 목표는 경쟁력 있고, 창조적이며, 비평적 관점을 가진 전문적 디자이너/빌더를 훈련하는 것” – 세계건축사연맹(UIA)

“건축은 기능적, 기술적, 사회적, 미학적 고려를 모두 반영하는 형태와 공간과 장소의 분위기를 계획하고, 디자인하고, 건설하는 과정과 그 결과물 모두” – 위키피디아

건축은 실무로부터 비롯된 학문이므로 순수예술과는 다르다. Professional Education. 서구에서 정의된 건축의 본질은 “아름다움의 보편적 질서를 시각적 형식으로 표현하는 오브제”이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이후 건축의 외형 이외의 공간, 기능, 프로그램이 점차 중요시되었고 현대에 와서는 건축의 시각적 요소보다 보이지 않는 장소, 공간적인 요소들의 비중이 커졌다. 그러나 의미 있는 것을 창조한다는 본질은 그대로 남아있다.

고대, 중세에는 건축에 대하여 공유된 규범이 존재하고 있어서 건물들은 그 규범에 따라 지어졌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이후 공유된 규범이 깨지기 시작하였고, 근대건축운동을 지나 현대건축은 고전건축과 달리 공유된 규범이 사라지고 다양한 양식의 건물이 등장하고 있다. 기댈만한 기준이 되는 무언가가 사라졌기 때문에 현대의 건축가들은 각자 건축에 관한 자신만의 언어를 확립하려고 노력한다.

 

그렇다면 한국에는 건축이 있었는가?

서양의 건축이 학문적 지식으로 정리되어 있다면, 한국의 건축은 경험적 지혜이다. 퇴계 이황의 ‘도산서원’은 이황 선생의 사상을 담은 유교적 건축의 이상향이며, ‘소쇄원’은 심오한 상징체계를 갖춘 유교, 도교적 건물이다. 이와 같은 건축들은 서양과 같이 학문으로 발전하지는 못하였다.

 

< 예술과 기술 사이에서 건축의 전문화 >

Architecture의 어원
archi-tekton (tekton : 단순 기술자가 아닌, 이론과 감성(지식)을 가지고 만드는 사람.)

르네상스 시대에는 건축가가 엔지니어이기도 했다. art = science

17세기 바로크 후반, 우주에 대한 자각이 높아지고 근대에 들어와 자연을 수학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18세기 초반에는 예술과 자연과학이 분리되었고 엔지니어가 발전했다(1716).

엔지니어들은 체계적인 교육시스템 속에서 훈련되었다. 프랑스의 ”Ecole polytechnique”는 건축의 기술자 역할을 배양해내는 곳으로, 나폴레옹의 전폭적인 후원 속에서 프랑스의 도로, 다리, 군사시설을 만들어내는 사람을 육성하였다. 미학적 가치에 관심은 없으나 효율적인 건물을 짓는 엔지니어들에게 설계를 가르치는 방법을 고안하여 빠르고 쉽게, 기능주의적인 교육과 매뉴얼을 제공했다. (Durand 1804)

 

Architecture as Art of Design VS Architecture as Science of Building

19세기 이후 자연과학이 발달하였고, 엔지니어가 발전, Fine Art와 Engineer가 분리되었다. 건축가가 미적 감각과 드로잉으로 작업을 한다면 엔지니어의 작업은 계산을 통해 이루어졌다. 19c에는 건축가와 엔지니어의 협업이 많았다. 협업하는 중에도 엔지니어의 실증적, 객관성이 큰 지지를 얻어 건축가를 위협하였다. 엔지니어의 승승장구에 위기감을 느낀 건축가는 계속 엔지니어를 정의하였다.

“엔지니어는 구조물, 기계장치나 생산설비 등을 개별적 또는 혼합하며 사용하는 작업을 디자인하고 발전시키는데 과학적 지식을 적용하여 구현하는 사람”

<건축을 향하여>에서 르꼬르뷔지에는 건축가는 엔지니어에게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건축은 뛰어난 거장의 실력과 정확함, 고상함으로 빛과 어우러지는 덩어리를 다루는 것이라 얘기하고 있다.
“Architecture is the masterly, correct, and magnificent play of masses brought together in light”

 

건축의 융합적 성격

건축은 통합적 영역이다.

“건축은 이성과 감정, 직관 사이의 긴장 속에서 창조된다. 건축교육은 빌딩의 아이디어를 개념화하고 조합하고 실행하는 능력을 드러나게 해야 한다. 건축은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기술, 환경과학 그리고 창조적 예술, 교양의 융합적 영역이다.” -UIA

런던 템즈 강의 밀레니엄 브릿지, 칼라트라바의 통신탑은 엔지니어가 아닌 건축가가 설계하였다.

 

< 한국에 (전문영역으로서) 건축은 있는가? >

한국에서는 건축개념이 파편화되어 공학, 기술, 예술, 인문학, 사회과학 등 다양하게 정의하고 있다. 한국의 근대건축은 일제강점기 때 서양의 양식을 받아들인 일본건축이 유입되면서 갑자기 형성되었기 때문에, 이미 기술로 다져진 서양의 건축은 건축을 공학적으로 인식하게 하였다. 그러나 건축은 공학이 아니다. 그렇다고 예술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한국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건축은 다양하게 정의하고 있다. 피터 아이젠만은 철학적 예술이라 하였고, 노먼 포스터와 렌조 피아노는 문제 해결의 기술로 보았다. 프랭크 게리는 건축은 아트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서양은 건축을 정의하는 토대가 있다. 우리나라는 토대를 구축할 시간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건축에 대한 학문적 소통이 어렵다. 건축과 관련한 여러 이야기들이 허공에 붕 떠서 부유하는 실정이다. 지금에 와서 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이제부터라도 토대를 만들기 위한 담론을 형성해야 한다.

한국에는 건조환경의 디자인과 시공에 관한 통합적 학문과 실무를 연결하는 건축개념이 없어서 설계와 감리 사이에 소통이 어렵다. UIA에서는 건축 실무를 “도시계획과 건물 또는 건물군의 건설, 확장, 보존, 복원, 변형에 관한 전문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이 개념이 한국에는 없다.

또한, 문화공간학회, 박물관학회, 교육시설학회, 현대한옥학회, 청소년시설학회 등 각종 건축 관련 학회가 난무한 것도 한국 건축의 문제점이다. 토대가 있으면 분화될 일이 없는 영역구분이 두드러지는데 정작 건축의 전문성은 약하다. 학회뿐 아니라 실무영역에서도 건축이라는 중심이 없이 공간디자인, 공공디자인, 관경디자인, 테마파크디자인, 외피디자인 등 뿌리 없는 가지들이 공중분해 되어있다.

대한민국에 건축은 없다. 이는 긍정 부정을 떠나서 지금의 현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건축가들은 이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 요약 : 김주은 학생 Sta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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