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종건 교수를 만나다

이종건 교수(경기대)는 우리 건축이 바로서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건축주류에서 항상 배제되어 왔던 비평계의 원로이자 얼굴이다. 비평집 『해방의 건축』을 시작으로 『중심이탈의 나르시시즘』, 『텅 빈 충만』 등 많은 저서를 집필했고, 각종 매체와 컨퍼런스를 통해 활발한 비평 활동을 하던 그였지만 언제부터인가 그의 목소리를 듣기가 힘들어졌다.

긴 공백기를 끝내고 새로운 저서 『건축없는 국가』로 돌아온 이종건 교수는 책을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의 세상이 건축비평을 원하거나 필요로 하지 않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더 이상 ‘비판성(criticality)’이 작동할 수 없는 사회가 아닌지 모르겠다. 비평의 공급이 아니라 비평의 수요를 말하는 것이다. 건축에 대한, 오늘날의 건축에 대한, 오늘날 우리 건축에 대한 좀 더 나은 안목과 인식과 지식이 분명히 요구되는 곳에서마저, 비평이 늘 요청/초대받지 못했다.”

이성적 비판 없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건축을 바라보는 그의 안타까움이 드러난다. 그는 『건축없는 국가』에서 우리의 건축을 바로 세우기 위해 어떤 자세와 전략을 가져야 할 지 제시한다. 오픈 아키텍처 렉처의 두 번째 강연자로 나선 이종건 교수를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미리 만나봤다.

 

Q. 지금껏 많은 강연을 해오셨습니다. 일반 청중 앞에 서실 때와 학교 강단에 서실 때 어떤 차이가 있으십니까.

A. 학교에서는 교수(敎授) 행위가 15주라는 긴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까닭에, 작은 프로젝트지만, 기초에서 마감까지, 거론할 수 있지만, 학교 밖에서는 거의 일회성인 까닭에, 중요한 논점만 강조할 수밖에 없고, 그나마도, 그것을 충분히 해명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서, 거의 선포수준에 머무는 한계를 띱니다.

 

Q. 강연장이나 교단에서 독자와 학생들과 소통하실 텐데 청중들과의 대화에서 생산적인 이야기가 많이 생기는 편이십니까.

A. 학교 밖의 강연이나 세미나의 경우, 생산적인 것은 고사하고, 대화가 거의 없었다. 수동적인(질문이 없는) 교육방식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비평의 부재를 걱정하시고 그 원인이 비평에 대한 수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는 건축계에는 이제 비평할 거리가 거의 없다고도 합니다. 선생님께선 비평할 거리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내가 언급한 비평수요의 부재는, 비평할 거리 유무라는 논제와 전혀 상관없이, 단순히 우리 건축사회의 사실을 적시한 것입니다. 비평작업에 개입해 온 지난 20년을 거칠게 10년 단위로 두 시기로 나누면, 후반기는 전반기에 비해 매체와 공공의 장에서의 비평작업의 양이 현격히 떨어진, 그래서 가히 비평부재기라 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많은 건축가들은 비평을, 그것도 온당한(‘수준 높은’이라는 다소 대중적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비평을 원합니다. 그에 반해, 그러한 비평을 해낼 수 있을 비평가가 우리 건축사회에는 지극히 적습니다. 수뿐 아니라 문화의 힘 또한 그렇습니다. 지나치게 기우뚱한 현상이 일차적인 문제입니다.

 

Q. 이번에 집필하신 [건축없는 국가] 中 우리의 국민성을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정적인 면에 많이 치우쳐져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특징이 주는 가능성도 있지만 문제점이 더 많을 것이라고 걱정하시는데 감정이 우선되기 십상인 우리사회에서 건축가의 태도는 어때야 하겠습니까.

A. 건축가뿐 아니라 문화에 관계하는 모든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이성에 근거해서 감성을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과거의 전통을 현실에 맞게 재구성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실 때 영화 armistad 의 구절을 인용하신 글이 기억에 남는데 전통 재구성의 작업 중 눈에 띄는 한국의 예 혹은 외국의 예가 있으십니까.

A. 우리의 경우는 아직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없었고, 외국의 경우, 대부분의 대가들은 그렇게 작업을 합니다. 예컨대, 심지어 현대건축 거장인 르 꼬르뷔제도 마지막 고전주의자로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Q. 앞의 질문에서 한국건축에선 아직 전통을 현실에 맞게 재구성한 좋은 예를 찾지 못하셨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그 이유 즉, 지금까지 한국건축의 한계는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A. 니체의 “비판적 역사주의”의 견지에서 전통을 다룬 적이 없는 탓에, 생산적이지 못 했다고 생각합니다.

 

Q. 건축은 잉여향락의 대상이고 곧 문화라고 말씀하셨다. 건축이 없다는 말씀이 한국에서 건축은 잉여향락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말씀이신지 궁금합니다.

A. 그렇지 않습니다. 나의 염려는 다만, 잉여향락이 결핍된 상황을 건축문화로 간주했고, 간주하는 경향들이 지나치게 과하다는 것입니다.

 

Q. 그렇다면 지금까지와는 달리 문화로써의 건축이 조금씩 자리 잡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 잉여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경제적 이유에서든 문화적 영향 때문이든, 삶의, 정신의 여유가 원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Q. 책을 읽어보면 서사로써의 건축이 있어야 건축의 담론이 생기고 유지될 수 있을텐데 한국에선 ‘공유되는 서사’가 없다는 말씀이신지 아님 공유를 거부하는 권력으로써 서사가 있다는 말씀이신지 궁금합니다.

A. 우리 현대건축에 관한 한, 아직 어떤 서사도 구성하려는 시도가 없었습니다. 물론, 그것을 (서구)아키텍쳐의 서사에 편입시키려는 시도 또한 없었습니다.

 

Q. 선생님께선 건축가의 할 일을 모든 체제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항해야할 체제라는 것이 책에서 말씀하신 서사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까.

A. 서사와 체제는 서로 다른 별개의 이슈입니다. 건축작업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시작(詩作)은 주어진 체제에 저항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Q. 아키텍쳐와 건축, 서양과 대한민국이 다르지 않을까라는 회의에서 건축이 만들어 나갈 많은 방향의 시작점이 생성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새롭게 시작될 방향이 조성되는 분위기가 아직 없다고 보시는지 아님 가능성을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A. 지금까지는 없었지만, 앞으로는 해석학의 도움으로 생성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 새롭게 시작될 건축은 어때야 할지에 대한 선생님의 의견과 그 과정에서 비평의 역할은 무엇일지에 대해 여쭈어보겠습니다.

A. 앞으로는 건축과 아키텍쳐 간의 차이를 분명히 알고 작업하는, 그래서 모든 형태의 건축문화 작업에 그러한 ‘차이의 인식’이 개입되길 희망합니다. 그 과정에서 비평의 역할은, 우리의 문제를 예민하게 파악하여 공적으로 논의 가능한 수준으로 제기하는 것입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느낀 우리가 해결해야할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현대건축에는 서사가 부재 한다는 이종건 교수의 말이 엉키기만 해온 우리의 이야기를 풀기 시작하는 실마리가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어떤 이야기를 왜 해야 하는지만 고민하기보단 당장의 우리 각각이 생각하고 있는 이야기를 공론화될 수 있는 장으로 가지고 나와야할 것이다. 이렇게 나아가는 과정에 비평은 적절한 방향을 제시하는 조타수의 역할을 할 것이고 비평이 제시하는 방향을 어떻게 이용하는가는 건축가가 결정할 몫일 것이다. 한국건축의 비평계에서 언제나 날카로운 시선으로 건축을 응시하고 있는 이종건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이종건 경기대학교 교수
저서로 『건축의 존재와 의미』, 『해체주의 건축의 해체』, 『해방의 건축』, 『중심이탈의 나르시시즘』, 『텅 빈 충만』 등이 있고, 역서로 『기능과 형태』, 『추상과 감통』, 『차이들: 현대 건축의 지형들』, 『건축 텍토닉과 기술 니힐리즘』, 『건축과 철학: 건축과 탈식민주의 비판이론, 바바』 등이 있고, 작품으로 한국건축가협회 초대작가 전에 출품한 <삼가>가 있다.

 

 

취재 및 정리: 이병기, 김주은 학생 Sta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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